|
===================================== 〔語彙分解〕的な部分一致の検索結果は以下の通りです。 ・ 桂 : [けい, かつら] (n) (abbr) knight (shogi) ・ 桂月 : [けいげつ] (n) (arch) moon ・ 月 : [つき] 1. (n-t) moon 2. month
桂 月香(ケ・ウォリャン、? - 1592年?)は、李氏朝鮮時代の平壌に居たとされる朝鮮で語られる伝説上の女スパイ。韓国では美貌の義妓(愛国的な娼婦の意味)。伝説とは言うものの、ストーリーは無数にバリエーションがあり、実在は極めて疑わしい。 == 概要== 桂月香は平壌府の府妓〔李氏朝鮮では、官婢として妓生(娼婦)が養われていた。府に70~80人常駐していた者を府妓という。桂月香はこの1人とされる。〕で、平安道兵馬節度使金景瑞(김경서、別名金應瑞、김응서)の愛妾となっていて、1592年の文禄の役で6月11日に平壌が陥落すると、日本側の動向を偵察する目的で、小西行長の家臣内藤如安の愛妾となり、情報を金景瑞に流していたとされる。数ヶ月内藤と閨を供にし、12月のある晩、泥酔して寝ている内藤の寝首を掻いて暗殺し、その首を刎ねてを金景瑞に送ったとされる。 内藤如安暗殺の後、平壌を脱出してきた桂月香が内藤の子を妊娠していた為、怒った金景瑞は桂月香を殺し、腹を裂いて胎中の子も八つ裂きにして殺した。〔『桂月香物語の死の変遷("계월향 이야기"와 "죽음"의 변주)』によると、「(要訳)平壌の妓生桂月香は、壬辰倭乱の時に金應瑞と共謀して、倭将を殺したが、自らは金應瑞に殺された。桂月香の倭将暗殺は、民族を救った忠義の行動として良く引用され、桂月香は愛国的女性の模範とされた。しかし、金應瑞を助けて倭将を殺害した事実だけが強調される一方、金應瑞による桂月香の殺害は隠され、倭将を殺して本懐を遂げてから、倭兵に殺されるか、自殺した事にすることにより、倭将だけを悪く描くよう歪曲している。 (계월향은 평양기생으로, 임진왜란 때 김응서와 공모하여 적장을 죽이고 자신은 김응서에게 죽임을 당했다. 계월향의 왜장 살해는 민족을 구한 충의의 행동으로 거듭 언급되었으며, 계월향은 모든 여성의 모범이 되었다. 하지만 김응서를 도와 왜장을 살해한 사실만 부각할 뿐, 김응서에 의한 계월향의 죽음은 숨기거나 여성의 능동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주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연인과의 행복을 추구하지만 교화된 후 민족을 위해 대범하게 임무를 수행해 나가는 여장부로 변모한다. 임무 완수 후 왜장을 죽여 여한이 없으므로 자신을 죽여 달라거나, 자결로 마무리함으로써 민족애를 고조한다. 광복 이후 계월향은 국난에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어떠한 망설임 없이 국가를 위해 계획·실행하고, 임무 완수 후 죽음을 맞는 완벽한 자기희생적 모습을 보인다. 죽음도 김응서의 죽음 종용을 수용하는 측면이 있지만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모습을 보인다. 계월향은 과거의 시간 속에 존재했던 인물이 아니다. 민족의 고난과 함께 끊임없이 호출되어 각색되었다. 계월향은 민족 고난을 충렬로, 민족애로, 주체적으로 이겨내어 근대 이후의 공간에서 의기로 인정받았다. 그 과정에서 계월향의 죽음은 사회적 필요성에 의해 변모되었다고 하겠다.)」と説明されている。〕 ただし内藤如安は文禄の役で死んではおらず、その後関ヶ原の戦いでも生き延び、キリシタン禁令のあとフィリピンに追放され、1626年マニラで逝去しているなど、史実とは著しく齟齬があるほか、そもそも、暗殺したとする人物すらも資料によってバラバラで一定しておらず、寝首をかいた相手を単に「倭将」とし、個人名が一切登場しないものもある。よって史実である根拠は皆無と言ってよく、全ては寓話で、桂月香も実在しない、フィクションの人物と判断されている。しかし朝鮮では伝説は変遷があって歴史の中にもぐりこみ、特に北朝鮮では現在も歴史上の人物と見なされている。 抄文引用元・出典: フリー百科事典『 ウィキペディア(Wikipedia)』 ■ウィキペディアで「桂月香」の詳細全文を読む スポンサード リンク
|